국산 자동차, 세계로 진출하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15년 1월「이달의 기록」
행정자치부 등록일 2015-01-19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국산 자동차의
미국 첫 수출일(’86.1.20.)을 기념하여,
1월의 「이달의 기록」 주제를 “국산 자동차,
세계로 진출하다.”로 정하고, 관련 기록물을
1월 20일(화)부터 홈페이지(www.archives.go.kr)를
통해 서비스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소개되는 기록물은
총 34건(동영상 12, 사진 18, 문서 4)이며,
’50~’80년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육성 및
성장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해 우리나라는 452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였으며, 그 중 306만 대를 수출하여
489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 수출액을 기록하였다.
특히, 자동차 시장의 본거지인
미국에 79만8천 대(1~11월 누계 기준)를
수출하여 전체 수출에서 28.9%를 차지하였다.
(출처 : 산업통산자원부)
1950년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우리 손으로
1950년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우리 손으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첫 국산
자동차인 시발자동차가 탄생하였다.
1955년 미군이 쓰던 지프차를 손으로 두드리고,
국산 엔진을 얹어 시발자동차를 만들었다.
이후 1957년 이 자동차의 고급형인
‘시발 세단’을 생산하여 시험 주행하였는데,
당시 영상에서는 미국 자동차와 별반 차이가
없는 최신식 국산 승용차로 소개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1960년대 현대식 자동차 제조공장이 들어서고,
소형 자동차의 국내 조립이 가능해지면서
자동차산업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1960년대 정부는 자동차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첫 현대식 자동차공장인 새나라자동차 공장
건설을 시작으로 신진자동차, 아시아자동차,
현대자동차 등이 속속 설립되었다.
더불어 부품 국산화와 외국차와의 내수 경쟁을
위한 국산 자동차 장려 정책도 추진하였다.
특히 국산 자동차에 대한 무제한 ‘넘버‘ 부여,
각종 세금 혜택 등 파격적인 장려책을 지시한
대통령 문서(1965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자동차 부속품과 자동차가
해외에 수출되기 시작하였다.
1962년 자동차 부품 피스톤이 동남아에,
1967년 하동환자동차공업(주)가 생산한
대형버스가 베트남에 첫 수출되면서
자동차 수출국으로서의 기반을 다져갔다.
1970~80년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은 도약과 불황,
1970~80년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은 도약과 불황,
재도약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자동차강국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러나 정부의 자동차산업 육성정책은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1975년까지 완전 국산화할 것,
차종 및 차형은 단순화할 것”을 지시한
대통령 문서(1973년)에서 보듯,
그 동안 진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해결할
사항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76년, 드디어 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를 생산하여 중동, 중남미에
수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포니는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세계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으나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으로
인해 세계적인 불황 국면으로 수출이 주춤하기도
하였다.
이후, 1986년 국산 자동차 ‘포니엑셀’이 처음으로
자동차 종주국이자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에
진출하여 선전하면서 재도약의 전기를 맞았다.
더불어 ‘88서울올림픽을 전후로 내수판매가
급증하면서 자동차 생산대수가 처음으로
100만대를 넘어섰다.
지난 60년 동안 국산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땀과 노력은 현재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자 3위의 수출국으로 성장하게 된
밑거름이었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국산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가 오늘의
자동차강국이라는 결실로 이어지는 과정을
기록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담당 : 국가기록원 김영지 (042-481-6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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