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7일 목요일
1919년 그날의 함성과 염원, ‘독립’을 달구다.
1919년 그날의 함성과 염원,
‘독립’을 달구다.
- 국가기록원,
‘3·1운동 판결문’ 자료집 발간 -
안전행정부 등록일 2014-02-26
안전행정부 국가기록원(원장 박경국)은
3·1운동으로 재판받은 55건(220명)을
선별하여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자료집(3·1운동Ⅰ)」을 발간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자료집은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일제강점기 판결문(2,673권) 중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서울·경기,
강원, 충청도 지역의 3·1운동 판결문을
선별한 것으로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수록하였다.
그간 판결문 원문은 한문과
일본어로 쓰여져 일반인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번 자료집 발간으로
각 지역 3·1운동 연구와 일반인의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일제가 기록한 220명의 판결문은
각 지역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3·1운동의 다양한 사례를 잘 보여준다.
강원도 횡성에서 1919년 3월 27일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신재근은
당시 64세였다.
그는 장도훈 등과 태극기 1폭과
5촌(寸) 크기의 종이로 만든
태극기 20매와 독립선언서 40매를
시장에 모인 300여 명에게 나누어주고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절규하였다.
그는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충남 천안 광명학교 여학생
민옥금·한이순·황금순 등은
3월 20일 천안 입장면 양대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웃한 병천의 유관순열사의
봉기보다 십여 일 앞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3월 20일 오전 10시 무렵, 이들은
학생 약 80명을 인솔하여 양대리
시장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조선 독립만세”를 외쳤다.
민옥금은 17세, 한이순과
황금순은 18세였는데
모두 징역 1년에 처해졌다.
이은선은 3월 24일 인천 계양
장기리 시장에서 심혁성·임춘성 등이
이끄는 독립만세 운동에 참가했다.
그는 300여 명이 모인 장기리
황어장터에서 체포된 심혁성을 구하려다
일제 순사의 칼에 찔려 현장에서 순국한
잘‘알려지지 않은 열사’이다.
또한, 이번에 발간된 자료집은
3·1운동의 전개 양상과 참여 주체를
파악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은
각 지방으로 파급, 3월 하순부터
4월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음을
보여준다.
주로 서울에서 선포된 선언서나
그 취지에 적극 동조하며
장이 열리는 시장에서, 고개에서,
산봉우리 등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일제의 식민통치 기관인 면사무소, 군청,
주재소, 우편소 등을 대상으로
만세운동을 펼쳤다.
그리고 3·1 운동 참여층은 연령뿐만 아니라
직업도 다양하다.
16세 학생부터 70에 가까운 노인까지,
교사와 학생은 물론 농부, 인력거꾼,
잡화상, 이발사, 승려, 날품팔이, 수공업자,
의사, 시계수리공, 야채행상 등 연령과
계층을 불문하고 ‘대한 사람’ 모두가
3·1운동의 참여 주체였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한편, 국가기록원은
자료집 발간과 더불어
독립운동관련 판결문을 선별하여
홈페이지‘독립운동관련 컬렉션’에서
공개하고 있다. 올해 사업이 마무리되면
인명은 물론 지역별·죄명별로 검색하여
독립운동관련 2만 4천여 명의 판결문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볼 수 있다.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은
“이번에 발간된 자료집이
3·1운동 연구에 도움이 되고,
3·1절을 맞아 국민들과 함께
민족정신을 기리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담당 : 국가기록원 이춘진(042-481-6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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